검은색 가죽과 스틸 프레임이 돋보이는 르 코르뷔지에의 LC 체어는 스티브 잡스가 주요 발표에서 즐겨 앉았던 의자로 유명하다. 단순한 선과 기능적 구조로 완성된 LC 시리즈는 애플의 디자인 철학에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지금도 여전히 가구 콜렉터의 워너비 아이템으로 손꼽히는 LC 체어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왜 지금까지도 ‘단순함의 기준’으로 남아 있는지 천천히 그 행적을 따라가 본다.

요즘의 미니멀리즘을 떠올리면, 결국 그의 의자가 다시 보인다
최근 미니멀한 디자인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애플이 떠오른다. 불필요한 선은 지우고, 필요한 기능만 남기는 방식. 그런데 그 시작점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놀랍게도 하나의 가구가 나타난다. 바로 르 코르뷔지에의 LC 체어 시리즈다. 스티브 잡스가 프레젠테이션에서 앉았던 의자, 애플 스토어의 ‘비워낸 구조’와 닮은 선, 그리고 사용자의 몸을 기준으로 설계된 단순한 형태. 그의 체어를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디자인은 결국 사람을 위한 기술이다.” 오늘은 르 코르뷔지에의 가구를 미니멀리즘의 시선으로, 그리고 지금 우리의 일상과 연결된 이야기로 다시 꺼내본다.
단순함을 사랑한 건축가, 가구에 사람의 몸을 담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가였지만, 그의 가구 디자인은 건축 철학을 그대로 내려놓은 결과물이다. 그가 추구한 건 늘 같았다. '필요 없는 장식을 없애고, 몸의 동선과 자세를 관찰하며 가장 편안한 각도만 남기는 것', 그래서 르 코르뷔지에의 LC 시리즈를 보면 ‘멋을 위해 만든 가구’가 아니라 ‘앉는 사람을 위해 만든 구조’라는 게 금방 느껴진다. 당시 유럽 가구가 장식을 덧붙이며 화려함을 추구할 때, 그는 오히려 덜어내는 쪽, 조용하고 선명한 선으로 방향을 바꿨다. 곡선을 최소화하고, 튜브 스틸의 선을 그대로 드러내고, 패브릭과 가죽은 단순한 직선으로 접힌다. 이 감각은 지금 말하는 ‘미니멀리즘’의 초기 형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스티브 잡스가 선택한 의자, LC 체어의 상징성
스티브 잡스는 공식 발표나 화보 촬영에서 자주 르 코르뷔지에 LC3 그랜드 모듈라 체어에 앉았다. 애플의 제품 철학과 가장 비슷한 가구가 뭐였을까? 그가 선택한 건 ‘장식을 뺀 구조’, ‘기능이 형태를 결정하는 디자인’, ‘사용자의 몸을 중심에 둔 의자’였다. 잡스는 늘 “본질을 남기고 나머지는 버려라”라고 말했는데 이는 코르뷔지에의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라는 철학과 놀라울 만큼 닮았다. '투명한 선', '균형 잡힌 비례', '과하지 않은 구조', '손에 닿는 즉시 이해되는 단순함'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애플 제품 디자인의 뿌리를 바우하우스와 르 코르뷔지에에서 찾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즉, 애플의 미니멀리즘은 LC 체어가 가진 정신에서 출발한 셈이다.
LC 시리즈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신체의 편안함을 위한 구조 실험’
1928년, 르 코르뷔지에는 피에르 잔느레, 샬롯 페리앙과 함께 신체에 가장 잘 맞는 의자를 찾기 위한 연구를 시작한다. 그들이 만든 LC 시리즈는 이렇게 요약된다. 첫 번째 LC1는 ‘휴식의 각도’를 찾기 위한 실험이었다. 그 결과 가죽과 튜브 스틸로 만든 라운지체어인 LC1은 허리를 기대는 순간 가장 안정적인 각도를 유지하며 장식은 없고, 오직 몸을 지지하는 기능만 남겼다. 두 번째는 LC2는 구조의 선을 드러낸 편안함이 특징이다. 폭신한 쿠션과 스틸 프레임으로 이루어진 박스 모양의 체어로 건축처럼 선은 단순하고, 안락함은 크게 확장됐다. 애플 스토어의 직사각 형태와도 감각적으로 닮아 있다.
세 번째는 잡스가 앉았던 넓고 낮은 모듈라 체어인 LC3다. 낮은 착석감과 넓은 팔걸이, 그리고 깊은 휴식을 주는 디자인이다. 앉으면 몸이 자연스럽게 중심을 내려놓게 되며, 스티브 잡스가 선택한 이유도 바로 이 ‘불필요함 없는 편안함’이었다고 한다. 마지막 LC4는 완벽한 인체 각도를 계산한 체어다. 누웠을 때 중심이 가장 안정적으로 분산되는 구조로 제작됐다. 최소한의 철제 프레임으로 최대의 편안함을 만든 의자로도 유명하다.
이 모든 가구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바로 “덜어낸 만큼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곡선, 장식, 표면 효과를 뺀 자리에 몸을 위한 가장 단순한 구조만 남았다. 이것이 바로 미니멀리즘의 본질이다.
‘보여주기 위한 미니멀’이 아닌, ‘몸이 편안한 미니멀’
요즘은 미니멀 인테리어라는 이름 아래 비슷한 가구와 색상들이 많이 소비된다. 하지만 LC 시리즈를 보고 있으면 르 코르뷔지에가 말한 미니멀은 지금의 ‘보여주기 미니멀’과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진다. 그는 사람의 동작, 자세, 휴식의 리듬을 먼저 관찰했다. 그리고 그 후에 불필요한 요소를 지웠다. 그래서 LC 체어는 '튀지 않지만 오래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다. 또 앉아 있을 때 가장 편안하고 어떤 공간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여기서 미니멀은 결국 “나답게 사는 방식”이라는 말을 조용하지만 깊이 확인시켜 준다.
오늘 우리의 공간에서 다시 떠오르는 의자
LC 체어는 단순한 명작이 아니다. 지금도 카페·라운지·서재·갤러리에서 자주 등장한다.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선의 정직함 때문이다. '구조로 완성된 미니멀', '기능에 집중한 형태', '여백을 남기는 선과 비례'. 이 의자들은 결국 “앉는 사람에게 가장 편안한 구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며 미니멀리즘 역시 그 지점에서 다시 태어난다.
오늘의 미니멀 라이프를 떠올리면, 르 코르뷔지에의 가구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미니멀의 기준은 물건이 아니라, 나에게 편안한 구조에 있다.” 스티브 잡스가 LC 체어를 선택한 이유도 결국 같았을 것이다. 본질을 남기고, 삶에 꼭 필요한 기능만 남긴 의자. 그 단순함이 지금 우리의 공간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