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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 팬톤이 남긴 감각의 본질, 색채의 미니멀리즘

story4574 2025. 11. 1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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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디자인사에서 베르너 팬톤(Verner Panton)만큼 색과 형태를 자유롭게 다룬 디자이너는 드물다. 그의 이름은 언제나 ‘컬러풀’, ‘미래적’, ‘실험적’이라는 단어와 함께 등장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놀라운 '단순함'과 '명료함'이 숨어 있다. 그는 ‘색의 본질’과 ‘감각의 질서’를 탐구한, 또 다른 의미의 미니멀리스트이다.

감각을 단순화한 디자인, 복잡함을 빼낸 명료한 색

감각을 단순화한 디자인, 복잡함을 빼낸 명료한 색

덴마크 출신인 베르너 팬톤은 초기에 한스 웨그너와 아르네 야콥센 같은 스칸디나비아 거장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길은 전혀 달랐다. 목재 중심의 따뜻한 북유럽 디자인이 아닌 그는 플라스틱·섬유·금속 등 새로운 재료에 매료됐다. 그에게 디자인은 “형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감각의 언어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그의 대표작 ‘팬톤 체어(Panton Chair)’는 이를 가장 명확하게 증명한다. 하나의 곡선으로 완성된 이 의자는 인체공학적 구조와 기능미가 완벽하게 맞물린 형태다. 불필요한 장식은 버리고 오직 기능과 구조만 남겼다. 그 곡선 안에는 인간의 움직임, 재료의 가능성, 그리고 시각적 조형미가 정제된 하나의 ‘질서’로 응축돼 있다. 이는 미니멀리즘이 추구하는 핵심인 ‘본질로의 회귀’와 맞닿아 있다.

색을 줄이지 않고도 단순함을 완성한 디자이너

일반적으로 미니멀리즘이라고 하면 무채색, 단조로움, 절제가 떠오른다. 하지만 팬톤은 “색을 없애는 대신, 색의 본질만 남겼다.” 그에게 색은 장식이 아니라 감정의 언어였다. 그는 색의 심리적 효과와 공간의 에너지 흐름을 연구하며, 색을 ‘감각의 최소 단위’로 다뤘다.

예를 들어 그의 ‘팬톤 체어 클래식(Panton Chair Classic)’이나 ‘비시오나(Visiona)’ 인테리어 프로젝트는 다채로운 색으로 가득하지만 이는 단순한 화려함이 아니다. 색의 관계, 대비, 조화가 수학적으로 정제돼 있다. 그의 공간은 마치 한 점의 순수한 색이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실험실 같다. 즉, 팬톤은 색을 “단순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감각을 명료하게 정리하는 철학”으로 사용했다. 이를 통해 그는 색을 통해 인간의 지각과 감정의 구조를 탐구한 '감각의 미니멀리스트'임을 알 수 있다. 

미래를 향한 단순함, 실험으로 완성된 철학

팬톤의 디자인 세계는 단순함을 목표로 한 끝없는 실험의 결과였다. 그는 재료를 바꾸고, 조명을 실험하고, 공간 전체를 감각적으로 구성했다. 그의 작업은 언제나 ‘경험의 단순화’를 향했다. 빛이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또는 색의 대비가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그는 이 모든 것을 디자인 언어로 해석했다.

특히 1960~70년대에 선보인 그의 조명 시리즈는 ‘빛의 미니멀리즘’을 잘 보여준다. 팬톤은 조명 기구를 단순한 기능적 도구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공간의 감정을 설계하는 장치였다. 곡선의 형태, 빛의 확산, 색의 반사까지 모두 계산된 디자인. 그 안에는 미학적 절제와 감각적 질서가 공존했다.

미니멀리즘, 형태보다 태도의 문제

베르너 팬톤이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은 형태나 색의 단순함에만 있지 않았다. 그의 미니멀리즘은 ‘감각의 본질을 남기는 태도’였다. 형태가 단순해 보이더라도 감정은 풍부하고, 색이 화려하더라도 질서는 명확했다. 그는 단순함을 외형으로 좇지 않고, 감각의 깊이에서 찾아냈다. 오늘날 미니멀리즘은 종종 무채색 공간, 절제된 형태로만 해석되지만, 팬톤은 그 반대의 길에서 미니멀리즘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에게 단순함이란, 정말 색을 줄이는 일인가?”

 

감각의 본질로 돌아가는 디자인

베르너 팬톤은 색을 줄이지 않고도 ‘본질적 단순함’을 완성한 디자이너다. 그의 세계는 화려하지만 혼란스럽지 않고, 대담하지만 정제돼 있다. 그는 색과 형태, 감각과 감정을 통합하며 '미니멀리즘의 철학을 감각의 언어로 번역'했다. 우리가 미니멀리즘을 “비움의 미학”이라 부를 때, 팬톤은 “감각의 질서”로 답한다.
그의 디자인은 복잡한 세상 속에서 감정의 균형을 찾는 법을 알려준다. 그것은 단순히 가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본질을 색으로 말하는 철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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