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게리는 해체주의 건축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직접 마주하면 의외로 ‘단순한 경험’이 남는다. 외관의 복잡함과 달리 내부 공간은 명료한 동선과 깊은 여백으로 구성된다. 이제부터 프랭크 게리의 건축이 어떻게 ‘형태의 과감함’ 너머에서 ‘경험의 미니멀리즘’을 완성하는지, 그리고 그 철학이 오늘 우리의 공간 감각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본다.
'해체주의'로 알려졌지만, 의외로 ‘단순한 경험’을 남긴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해체주의(Deconstructivism)’, ‘뒤틀린 금속 외피’, ‘조각 같은 건축물’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처럼 겉모습만 보면 미니멀리즘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런데 게리의 건물에 실제로 들어가 보면 처음의 인상이 조금씩 바뀐다. 공간은 복잡하지 않고, 동선은 직관적이고, 시선은 길게 정리된다. 빛은 매끈한 벽과 바닥 위를 차분하게 따라 흐르고, 건물 안에서 길을 잃을 것 같던 불안함은 금세 사라진다. 그의 건축은 겉으로는 과감하고 시끄러운데, 정작 안쪽은 조용히 정리되어 있다. 겉모습보다 ‘경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건축가였던 셈이다. 이 지점에서 게리는 조용한 미니멀리즘과 만난다. 형태는 과감하지만, 사람이 느끼는 감각은 오히려 단순하고 명쾌하다.
형태는 파격적이지만, 동선은 놀랄 만큼 미니멀하다
게리는 한 인터뷰에서 “Form follows emotion. 형태는 감정에서 나온다.”라고 말했다. 전통적 미니멀리즘의 “Form follows function(형태는 기능을 따른다)”과 다른 문장이지만, 결국 사람의 경험이 가장 우선한다는 철학에서는 같다. 그래서 그의 건물은 외피와 내부의 성격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바깥에서 보면 건물이 방향을 잃은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동선은 단순하다. 공간의 목적은 명확하고, 사람이 걷고 멈추는 지점마다 여백이 있다. 그의 작품은 불필요한 벽은 줄어들고 큰 면의 여백이 시야를 정리한다. 자연광이 기반이 된 설계와 동선은 흐르듯 연결된다. 이건 우리가 말하는 미니멀리즘의 언어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보이는 형태의 단순함’이 아니라 ‘살아가는 흐름의 단순함’을 만들어내는 건축. 그래서 게리의 건축은 형태는 해체되어도, 경험은 해체되지 않는다. 그는 결국 사람의 삶을 정리해 주는 방식으로 미니멀을 실천한 셈이다.
빌바오 효과, 복잡함과 여백이 공존하는 공간
게리의 대표작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도시 하나를 바꾼 건축”이라 불리며 또 다른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를 낳았다. 대담한 티타늄 외피와 조각적인 형태는 전 세계인의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건물의 진짜 미학은 안쪽에 있다. 실내는 단순한 벽과 넓은 여백으로 채워져 있으며, 작품이 놓이는 전시 공간은 의도적으로 조용하게 정리되어 있다. 과감한 외피는 바깥에서 시선을 잡아두는 장치일 뿐이다. 건물 내부에서 관람객이 느껴야 할 감정은 최대한 ‘비워져’ 있다. 내부는 높은 홀 소리를 흡수하듯 고용하고 통로는 긴 선으로 뻗어 있다. 작품이 돋보이도록 색과 질감을 최소화했고 빛은 과하지 않게 확산돼 안정감을 준다. 겉모습의 ‘소리’와 내부의 ‘고요함’이 공존하는 이 방식을 통해 게리는 오히려 '미니멀한 여백의 힘'을 증명했다.
게리식 미니멀리즘, 형태가 아니라 ‘감각을 정리하는 기술’
미니멀리즘의 본질은 ‘형태의 단순함’이 아니라 ‘감각의 단순화’다. 게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미니멀리즘과 가장 깊게 연결된다. 그의 건축은 정신없이 복잡해 보이지만 막상 그 안에서 우리는 명료한 감정을 느낀다. 애매한 모서리나 복잡한 통로가 주는 피로감이 없다. 대신 큰 공간, 넓은 벽, 빛이 흘러가는 방향처럼 감각을 정리해 주는 요소들만 남아 있다. 게리가 덜어낸 것은 ‘형태’가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방해하는 요소들이다. 그래서 그의 건축은 결국 미니멀리즘의 한 방식이다. 조용히 정리되어 있고, 사람이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중심이 된다.
오늘 우리의 미니멀 라이프와 연결한다면
프랭크 게리의 건축을 미니멀리즘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결국 한 가지 메시지로 남는다. “미니멀은 반드시 단순한 형태를 요구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느끼는가.”이다. 내 공간이 흰색이 아니어도, 선이 조금 복잡해도, 곡선이 많아도 괜찮다. 내가 편하면 그것이 미니멀인 것이다. 게리는 삶을 정리하는 방식이 꼭 직선적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건축으로 보여준 사람이다. 형태의 단순함보다 경험의 단순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미니멀 라이프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프랭크 게리는 해체주의의 건축가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형태의 미니멀리스트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