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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 율이 남긴 조용한 곡선, 부드럽고 따뜻한 미니멀리즘

story4574 2025. 11. 17.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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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 율(Finn Juhl)은 북유럽 모던 디자인의 단단하고 직선적인 무드를 사람의 몸처럼 부드러운 곡선을 강조하며 따뜻한 미니멀리즘을 다시 정의한 디자이너다. 핀 율의 곡선이 어떻게 미니멀한 여백을 더 깊고 편안한 분위기로 바꾸는지, 그리고 그의 디자인이 지금 우리의 생활 속 미니멀리즘과 어떻게 닿아 있는지 천천히 살펴본다.

곡선 디자인이 돋보이는 핀율의 대표작
공간을 부드럽게 만드는 곡선 디자인이 특징인 핀율의 대표작, 45 체어(45 Chair)

직선의 시대에서 곡선으로 말한 디자이너

핀 율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곡선’이다. 덴마크 디자인이 직선·단단함·기능성을 중심으로 발전하던 시절, 그는 사람의 몸을 따라 흐르는 부드러운 선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핀 율의 가구를 가까이서 보면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곡선은 과하지 않고 딱 필요한 만큼만 유려하며 팔걸이와 등받이가 만나는 지점은 손과 어깨의 동선을 먼저 떠올린 것처럼 자연스럽다. 요즘 말하는 미니멀리즘이 ‘비우기’나 ‘단순화’에 집중한다면 핀 율의 미니멀은 “덜어내는 미니멀이 아니라, 편안함만 남기는 미니멀.”을 강조한다. 그래서 그의 의자는 비워져 있어도 허전하지 않고, 공간을 온화하게 만들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다. 여백 속에서 오히려 선명해지는 디자인이 있다면, 그게 바로 핀 율이다.

 

곡선이 만든 따뜻한 미니멀리즘

핀 율의 가구는 장식이 많지 않다. 색이 절제돼 있고, 구조도 깔끔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차갑지 않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곡선이 공간의 온도를 바꾸기 때문이다. 미니멀 공간에서 가장 사라지기 쉬운 건 바로 ‘따뜻함’이다. 너무 많은 직선, 너무 많은 화이트 컬러, 너무 정돈된 표면은 공간을 깔끔하게 만들지만 때때로 냉정하게 느껴진다. 핀 율은 그 지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곡선은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공간의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 특징은 이렇다. 라운드 등받이가 벽과 부드러운 거리감을 만들고 곡선 팔걸이가 시야 속 직선을 완만하게 눌러준다. 그리고 프레임과 좌판 사이의 공간이 시각적인 여백을 만든다. 이런 요소들이 모이면 핀율의 가구는 '따뜻한 미니멀리즘'이라는 새로운 감각을 만든다.  

공간과 사용자 사이의 ‘완만한 거리’ 

이제 핀율의 대표작을 통해 그의 따뜻한 미니멀리즘을 살펴보자. 첫 번째 '45 체어(45 Chair)'는 그의 따뜻한 감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의자다. 먼저 이 의자는 프레임과 좌판 사이에 남겨둔 여백 덕분에 시각적으로 가벼운 느낌을 선사한다. 하지만 앉아보면 등받이의 기울기와 쿠션의 탄성이 몸을 자연스럽게 중심으로 끌어당긴다. “보이는 디자인”보다 “앉는 순간 완성되는 디자인”에 가깝다. 이게 진짜 미니멀리즘 아닌가 싶다.
적지만 충분한 것, 필요한 만큼만 남긴 구조가 핀 율이 말하는 따뜻함이다.

다음은 치프턴 체어(Chieftain Chair)다. 이 의자는 핀 율의 조형미가 가장 크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크게 휘어진 등받이와 과감한 팔걸이 라인은 겉으로 보면 단순한 곡선의 조합이지만 공간에 놓는 순간 중심을 잡는다. 치프턴 체어가 있는 공간은 큰 장식이 없어도 묘하게 안정적이다. 곡선 하나로 ‘공간의 긴장’을 정리하는 의자라 불리기도 한다. 다음 페칸 체어(Pecon Chair)는 라운지체어이지만 과하게 편안함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앉았을 때 허리가 받쳐지고 뒤로 기대는 각도가 절묘하게 맞춰져 있다. 핀 율은 사람의 자세를 강요하지 않는 디자이너였다. 그래서 그의 의자는 늘 ‘당신이 원하는 자세로 쉬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덜어내기보다 “정확히 남기기”

핀 율의 미니멀리즘은 다른 미니멀리즘 디자이너와 다른 출발점을 갖는다. 일반적인 미니멀은 불필요한 것을 줄이는 데서 시작되지만, 핀 율은 처음부터 정확히 필요한 것만 설계했다. 그래서 그는 과하지 않다. 하지만 부족하지도 않다. 핀율의 미니멀리즘은 여백이 있어도 공허하지 않고 형태가 단순해도 존재감이 선명하다. 또 곡선이 많아도 공간을 지치게 하지 않는다 핀 율의 가구는 “덜어냈다기보다는, 남길 것을 정확히 결정한 결과물”인 셈이다. 이 감각이 요즘 미니멀 인테리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의 미니멀 라이프에 전하는 메시지

요즘 미니멀리즘은 흰색, 직선, 수납, 정리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소비된다. 하지만 실제 생활은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핀 율은 그 지점을 아주 자연스럽게 이해한 사람 같다. 그의 가구는 “정리된 삶”보다
“편안한 삶”을 만든다. 직선에 지친 공간에 곡선을 더하고 과한 여백 속에서 온도를 되살린다. 그리고 사람과 가구 사이에 ‘완만한 거리’를 만들어준다. 그래서 핀 율의 디자인을 오래 보고 있으면 이런 질문이 조용히 남는다. "내가 비우지 못해서 답답한 걸까? 아니면 따뜻함이 부족해서 답답한 걸까?" 미니멀리즘이 차갑게 느껴질 때, 핀 율의 곡선은 그 빈자리를 조용히 채워준다. 크게 소리치지 않는데도 삶의 속도를 느리게 만들어주는 가구. 그게 핀 율이 남긴 미니멀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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