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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사와 나오토의 ‘Without Thought’와 미니멀 라이프

story4574 2025. 11. 15.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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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무심코 집어 드는 컵, 리모컨, 전기주전자에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 산업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는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행동을 관찰하며, 그 안에서 디자인의 출발점을 찾았다. 그는 이런 철학을 ‘Without Thought’라 부르며, 생각하지 않아도 손이 가는 미니멀 디자인을 통해 오늘의 미니멀 라이프에 중요한 힌트를 던진다.

후카사와 나오토(Fukasawa Naoto), 디자인 대표작 Wall mounted CD Player
후카사와 나오토(Fukasawa Naoto), 디자인 대표작 Wall mounted CD Player

왜 지금, 후카사와 나오토인가?

미니멀리즘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덜어내기”를 떠올린다. 물건을 줄이고, 색을 줄이고, 장식을 줄이는 방식이다.  하지만 일본 산업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Fukasawa Naoto)는 조금 다른 질문에서 출발한다.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을 때 어떻게 움직일까?"

후카사와는 디자인의 동기가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행동(unconscious behavior)에 있다고 보고 이 관찰에서 출발하는 자신의 디자인 철학에 ‘Without Thought’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에게 미니멀한 디자인은 “꾸밈을 뺀 예쁜 형태”가 아니다. 사용자가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 만드는 몸의 편안함에 더 가깝다. 

 

‘Without Thought’란? 생각하지 않아도 사용 가능

‘Without Thought’는 직역하면 “생각 없이”라는 뜻이지만, 후카사와가 말하는 의미는 조금 더 구체적이다. 그는 사람들이 물건을 사용할 때 복잡하게 사용법을 떠올리거나 설명서를 다시 펼쳐보는 상황이 아니라, “그냥 이렇게 쓰면 되겠지” 하고 몸이 먼저 움직이는 순간에 주목한다.

여러 연구에서는 후카사와의 Without Thought 디자인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사용자와 물건 사이의 무의식적인 상호작용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사용자가 “딱 적당하다(just right)”라는 느낌을 받는 디자인 원리다. 

즉, 좋은 디자인은 사용자가 의식적으로 “이 버튼은 뭐지?”, “이건 어디를 눌러야 하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후카사와는 이를 위해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제스처, 습관, 몸의 움직임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그래서 그의 미니멀리즘은 “보여주기 위한 심플함”이 아니라, “사용자를 덜 피곤하게 만드는 심플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배경으로 스며드는 미니멀 오브제

후카사와의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브랜드 중 하나는 무인양품(MUJI)이다. 그는 무인양품의 다양한 제품을 디자인했고, 브랜드의 디자인 자문에도 참여해 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작품이 바로 벽걸이 CD 플레이어다. 이 제품은 정사각형의 하얀 본체와 아래로 늘어진 끈, 끈을 “툭” 잡아당기면 음악이 켜지고 꺼지는 구조가 특징이다. 1999년에 MUJI를 위해 디자인되었고, 이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영구 소장품이 됐다. 특히 재미있는 점은, 이 아이디어의 출발점이 부엌의 환풍기라는 것이다. 천장에서 내려온 끈을 보면, 사람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 당겨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후카사와는 이 익숙한 행동을 CD 플레이어에 옮겨와 복잡한 버튼 없이 끈을 잡아당기는 단순한 제스처만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조작할 수 있는 인터랙션을 만들었다. 이는 벽 위에 걸려 있으면서도 방의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고, 하나의 조용한 오브제처럼 스며드는 모습 역시 그의 미니멀한 감각을 잘 보여준다.

 

일상의 물건, 일상의 미니멀리즘 

후카사와의 포트폴리오는 굉장히 넓다. 전기포트와 토스터, 커피 메이커 같은 주방 가전, 스탠드, 가습기, 시계, 스마트폰, 리모컨 같은 생활용 전자 제품, 의자, 소파 등 가구와 인테리어 제품까지 다양한 범위를 아우른다. 이 다양한 제품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점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그의 제품 디자인은 대체로 조용한 형태와 색을 지니고 있다. 화이트, 그레이, 베이지, 내추럴 우드 톤처럼 눈에 잘 걸리지 않는 색이다. 형태 역시 튀는 포인트보다 정리된 선과 간결한 면이 중심이다. 그래서 방 안 어디에 두어도 과하게 돋보이지 않고, 배경처럼 스며드는 미니멀한 존재감을 가진다. 

두 번째는 손이 닿는 부분의 자연스러움이다. 손잡이의 두께, 곡선, 모서리의 마감 같은 디테일은 겉으로 보기에는 과장돼 있지 않지만, 직접 잡아보면 “이게 편하네”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이유는 그가 디자인할 때 ‘몸의 감각’을 출발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후카사와는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행동 대부분은 직관적이고 무의식적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설명이 필요 없는 사용법이다. 후카사와의 제품들은 대체로 버튼이 많지 않다. 조작 방식이 단순하며, 제품의 형태 자체가 “어디를 눌러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이것 역시 Without Thought 철학의 연장선이다. 사용법을 외워야 하는 제품이 아니라, 보는 순간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오는 제품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미니멀 라이프에 적용할 수 있는  ‘Without Thought’의 기준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다 보면 종종 이런 고민에 빠진다. “이게 더 감각적이지 않나?” “이 브랜드가 더 트렌드 한 것 같아." 그런데 이런 고민이 쌓이다 보면, 오히려 머릿속이 더 복잡해진다. 이때 후카사와의 Without Thought 관점을 삶에 대입하면, 선택의 또 다른 기준을 갖게 된다. 첫 번째는 "손이 먼저 가는 물건인가?"를 질문해 보자. 설명하지 않아도 가족 모두가 쉽게 쓰는 물건인지, 매일같이 쓰지만 불편함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무건인지를 질문하면 우리의 생활에 가장 잘 맞는 디자인을 현명하게 고를 수 있다. 이는 그 물건이 이미 우리 몸의 리듬과 생활 패턴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질문은 “좋은 디자인인지”를 고민하기보다 "한 번에 이해되는가?"이다. 처음 보는 사람도 바로 사용할 수 있을까?, 굳이 사용법을 묻지 않아도 어디를 눌러야 할지 않을 있을까?를 물어보고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으면 그 물건은 이미 어느 정도 Without Thought에 가까운 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음은 "오래 두어도 거슬리지 않는가?"이다. 미니멀 라이프에서 중요한 건 “지금 예쁜가?”보다 “3년 뒤에도 여전히 거슬리지 않을까?”에 더 가깝다. 후카사와의 작업처럼, 과한 장식이나 유행하는 패턴이 아니라 배경이 되는 색과 형태를 가진 물건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질리지 않는다. 미니멀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면, 이 점이 꽤 중요한 기준이 된다.

 

‘Things in Themselves’  조용한 디자인이 말해주는 것들

2024년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는 후카사와의 작업을 조명하는 전시 「Naoto Fukasawa: Things in Themselves」가 열렸다. 지난 25년 동안 선보인 그의 대표작 100여 점을 통해 ‘without thought’, ‘super normal’, ‘outline’, ‘emergence’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그의 디자인 세계를 소개하는 전시다.

이 전시는 그가 단지 “예쁜 제품 디자이너”가 아니라, 사람과 물건, 환경 사이의 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해 온 디자이너라는 점을 보여준다.

전시를 소개한 기사와 인터뷰들을 보면, 후카사와는 이렇게 말한다. 디자인은 아름답고 사용하기 쉬워야 한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과 편리함을 굳이 의식할 필요는 없다. 이 말은 미니멀 라이프에도 그대로 겹쳐진다. 갖고 있는 물건이 많지 않더라도, 디자인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이게 편해서 자꾸 손이 간다”는 감각은 누구에게나 있다. 후카사와의 Without Thought는 결국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좋은 디자인은 눈에 띄지 않지만, 그 자리에 있을 때 삶이 훨씬 편안해지는 것이라고.

 

설명서 없이도 자연스럽게 쓰는 물건, 가족 모두가 별말 없이 잘 사용하는 물건, 오래 두었는데도 질리지 않고, 여전히 거슬리지 않는 물건... 이 물건들의 공통점을 적어보면, 당신만의 미니멀 라이프 기준이 조금 더 또렷해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아, 이게 바로 Without Thought구나” 하고 그의 디자인 철학을 몸으로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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